시를 읽고 도자기를 빚는 저녁

사랑에 대한 세 편의 시

APR 18, 2018

사랑에 빠지고 두 가지를 시작했다. 하나는 시를 읽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도자기를 빚는 일이다. 출근길에 시를 읽고, 퇴근 후에 도자기를 빚으며 당신을 떠올렸다. 나의 마음을 말해주는 듯한 표현을 읽고, 마음을 빚는 기분으로 물레를 돌리는 시간은 사랑을 닮았다.

아침에 읽은 박준 시인의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에는 다음과 같은 시인의 말이 적혀있다.

나도 당신처럼 한번 아름다워보자고 시작한 일이 이렇게나 멀리 흘렀다.

나도 당신처럼 한번 아름다워보자고 시작했다. 시를 읽고 도자기를 빚으며 당신을 떠올리는 일을.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폐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눈에서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땅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처럼
아득하다

나는 이제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를 악물어야 한다

이를 악물고
당신을 오래 생각하면

비 마중 나오듯
서리서리 모여드는

당신 눈동자의 맺음새가
좋기도 하였다

도자기공방에 도착해서 물레를 돌리는 동안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당신이 그 어떤 슬픔을 말해도 품어줄 수 있는 큰 사람이 되고 싶다. 물레 위에서 점점 형태를 갖춰가는 도자기처럼, 나의 마음도 당신의 어떤 감정도 품을 수 있는 모양이 되기를 바란다.

물레로 만드는 게 마음 같아서 조심스럽게 보듬는다. 도자기가 완성되면 마음처럼 들고 가서 당신에게 보여주는 상상을 한다.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도자기 위에 무늬를 그린다. 그 어떤 것도 그려도 된다는 말에 당신을 떠올린다. 별을 그릴지 꽃을 그릴지 고민하다 결국 당신을 그렸다.

푸른 도자기 위에 그 어떤 것을 그려도 당신이 된다. 푸른 밤 그 어디를 향해 가도 결국 당신을 향해 가는 마음처럼.

 

언덕을 따라 걸었어요 언덕은 없는데 언덕을 걸었어요 나타날지도 모르잖아요

양말은 주머니에 넣고 왔어요 발목에 곱게 접어줄 거예요 흰 새여 울지 말아요

바람이에요 처음 보는 청색이에요 뒤덮었어요 언덕은 아직 그곳에 있어요

가느다랗게 소리를 내요 실금이 돼요 한 번 들어간 빛은 되돌아 나오지 않아요

노래 불러요 음이 생겨요 오른손을 잡히면 왼손을 다른 이에게 내밀어요 행렬이 돼요

목소리 없이 노래 불러요 허공으로 입술을 만들어요 언덕을 올라요 언덕은 없어요

주머니에 손을 넣어요 새의 발이 가득해요 발꿈치를 들어요 첫눈이 내려올 자리를 만들어요

흰 천을 열어주세요 뿔이 많이 자랐어요 무등을 태울 수 있어요

무거워진 심장을 데리고 와요

나 자신이 한없이 가볍게 느껴지던 때가 있다. 마음에 당신이 자리 잡은 이후로는 든든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당신이 내 삶을 지탱해주는 걸 중력처럼 매 순간 느낀다.

당신에게 전해주고 싶은 몇 개의 시 구절을 외울 때쯤 도자기가 완성됐다. 마음이 손에 묻어난다면, 이 도자기는 당신으로 만들어졌다. 물레 위에서 모양을 잡고, 색으로 개성을 더하고, 단단하게 굳는 그 과정은 사랑을 닮았다.

사랑을 빚듯 도자기를 빚었다. 이제 그대를 생각하고 만든 도자기를 들고 당신에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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