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다시 피아노 앞에 앉다

마일로에디터의 피아노 체험기

APR 05, 2018

긴 손가락, 짧은 피아노 경력

‘피아노 잘 치죠?’

손가락이 긴 편이라 자주 듣는 질문이다. 고개를 끄덕이고 싶지만 ‘바이엘 하권’이라 답하고 아쉬워한다. 나는 왜 가장 기초인 바이엘 상하권을 끝으로 피아노와 이별한 걸까. 초등학교 입학 후 지금보다 짧은 손가락으로 처음 피아노를 쳤을 때만 해도, 손가락이 얼만큼 길어질지는 몰라도 피아노는 오래도록 칠 줄 알았다.

 

 

 

피아노연습실의 무법자

짧은 나의 피아노 역사에서 내 역할은 ‘무법자’였다.

당시 내게 피아노는 청각보다 촉각의 악기였다. 건반을 누를 때마다 느껴지는 묵직한 감촉이 신비로웠다. 어느새 그 감각에 심취해서 마구 두드리듯 누르면 악보에 없는 ‘우르릉쾅쾅’ 소리가 난다.

자연재해처럼 갑작스러운 소리 때문에 옆방에서 연습하던 아이가 찾아와서 조용히 하라는 경우가 많았다. 화나서 붉어진 아이의 얼굴은 붉은색과 흰색으로 이뤄진 건반 같았다. 붉은 볼을 누르면 검은 건반을 누를 때 나오는 플랫음이 나올지 궁금했다. 아이가 돌아가고 검은 건반을 누르는데 그 음이 방금 들었던 아이의 높은 목소리 같다. 건반을 차례로 누르면서 귀에서 맴도는 말을 흥얼거린다. 시, 끄, 러, 워!

 

 

 

20년 만에 다시 피아노

바이엘 하권이 끝날 때까지도 건반을 쿵쾅거리며 천둥소리를 내고, 장대비 같은 항의를 불러일으켜서 나의 피아노 역사는 빠르게 막을 내렸다. 덕분에 지금도 피아노를 생각하면 귀보다 손이 먼저 쩌릿쩌릿하다. 건반을 누를 때의 감각이 귀에 닿는 소리보다 강렬했으니까.

다시 피아노 앞에 앉기까지 20년 가까이 걸릴 줄은 몰랐다. 내 감정을 표현할 방법을 찾다가 아주 멀리 돌아서 피아노 앞으로 왔다. 출장이 잦은 아버지와 한 달 만에 만나도 어색한데, 그보다 몇 배는 긴 세월을 떨어져 있던 피아노와의 재회는 데면데면함으로 가득하다. 괜히 건반 여기저기를 누른다. 피아노가 내는 소리 안에 안부인사 정도는 섞여 있을 거라고 믿고 피아노에 앉는다.

 

 

 

계속 쳐보겠습니다, 피아노

피아노를 ‘연주하다’보다 ‘치다’라는 말로 더 자주 표현한다. 전자는 청각을, 후자는 촉각을 표현한다. 오랜만에 만난 피아노 앞에서 감촉을 느낀다. 각각의 손가락으로 서로 다른 건반을 누르고 페달을 밟는다. 어깨나 손목에 들어간 힘의 강도와 각도, 누르고 있는 시간에 따라 소리가 다르다.

답답한 마음으로 건반을 누르면 탁한 소리가 난다. 내 마음과 상관없이 좋은 음만 내주길 바랐으나 욕심이다. 손끝으로 소리의 울림을 느끼며 피아노와 호흡을 맞춘다. 피아노를 치면 칠수록 차가운 건반에서 따뜻한 음이 나온다.

글이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손끝에 담아서 피아노 소리로 발산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건반을 누른다. 도, 레, 미, 도, 레, 미.

 

 

 

촬영장소 제공 : KMC홍대실용음악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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