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잠이 들었는데 잊지 못할 꿈을 꿨어

꿈에서 본듯한 소설 속 인상적인 세 장면

APR 03, 2018

4월이 되고 날씨가 많이 따뜻해졌다. 봄의 따스함에 오후가 되면 금세 나른하다. 조는 것보다 아예 좀 쉬는 게 낫겠다 싶어서 요즘은 점심시간에 수면카페에서 눈을 붙인다. 안마의자에 몸을 맡기다가 스르르 잠들면 출근길에 읽은 소설 속 한 장면이 꿈에 나온다. 귀여운 캐릭터가 나오면 깨는 게 아쉽고, 상상하기도 싫은 무서운 상황이 나오면 꿈이었음에 안도한다.

오후에 꿨던 꿈을 곱씹으며 퇴근길에 다시 소설책을 편다. 오늘 밤 꿈에 나올 법한 풍경이 담긴 이야기를 기대하며.

 

 

신의 장난
김영하 소설집 ‘오직 두 사람’ (출판사 문학동네) 중에서

소설 속 네 명의 인물은 신입사원 연수라는 생각으로 인사 담당자를 따라 어떤 방에 들어간다. 들어간 곳의 디자인은 방탈출게임방을 연상시킨다. 연수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했으나 연락이 차단되고 갇혀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점점 불안해진다. 울거나 철문을 부수려는 등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며 지내는 와중에 어느 날 자는 동안 한 남자가 거세당한다. 갇힌 거라는 의심은 점점 확신으로, 희망은 체념으로 변한다.

잊지 못할 악몽을 물으면 공룡이나 귀신이 쫓아오는 꿈이 아니라 김영하의 ‘신의 장난’처럼 실제로 있을 법한 상황에서 무서운 일이 벌어지는 꿈이라고 답한다. 현실과 구분이 안 될 만큼 생생할수록 고통스러워서 꿈이라는 걸 알아도 두렵다. 눈 뜨자마자 오늘 하루가 행복하길 바라듯, 즐거운 꿈을 꾸길 바라며 잠든다.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박민규 소설집 ‘카스테라’ (출판사 문학동네) 중에서

소설 속 ‘나’는 정규직 전환을 바라는 인턴사원이다. 치열한 경쟁에 걱정 가득이고 음흉한 인사팀장은 계속 눈치를 준다. 그 와중에 손팀장이 자신의 컴퓨터를 봐달라고 한다. 가보니 손팀장은 컴퓨터로 너구리 게임을 하고 생김새도 점점 너구리처럼 변해간다. 음흉한 인사팀장은 손팀장이 너구리 광견병에 걸렸으니 멀리하라고 주의를 준다. 그 이후 나는 자꾸 너구리와 마주치고, 너구리란 즐거움 그 자체라서 자본주의가 너구리를 해롭다고 모함해서 멸종시키려 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박민규의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속 너구리 같은 게임캐릭터가 꿈에 나온 적 있다. 초등학생 때 많이 했던 격투게임인데 생각난 김에 다시 해봤다. 게임을 하다가 내가 좋아하는 것만 골라서 하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즐거움을 우선순위 뒤로 두고 바쁘게 사는 일상에서 나는 얼마나 더 행복한지 자신에게 묻는다. 여전히 답을 찾고 있지만, 그때의 꿈은 내 삶에 던져진 큰 힌트 같다.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정식 야채볶음흙
이기호 소설집 ‘갈팡질팡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출판사 문학동네) 중에서

전쟁경보 같은 사이렌이 도시에 울리고, 소설 속 ‘나’는 평소 전쟁에 대비한 아버지가 만든 지하벙커에 홀로 숨는다. 혼자 머물면서 준비된 건빵도 다 먹고 수돗물로 버티다가 결국 허기를 못 이기고 흙벽을 긁어서 난생 처음으로 흙을 먹는다. 그 맛이 예상보다 괜찮아서 벙커에서 사는 반년 동안 흙만 먹었다. 벙커에서 나온 뒤로도 일반음식은 소화 시킬 수 없어서 ‘계란 흙 프라이’, ‘고령토 떡볶이’, ‘황토 잡채’, ‘부엽토 고기만두’, ‘개흙 콩나물무침’ 등 흙요리만 먹는다.

출근길에 이기호의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정식 야채볶음흙’을 읽고 점심시간에 팀원과 함께 수면카페에 갔다가 기절하듯 잤다. 돌아가는 길에 팀원이 중간에 보면 내가 자는 동안 자꾸 입으로 뭘 오물오물 먹었다고 한다. 입에서는 아직도 그 맛이 돌아서 저녁 메뉴로 먹을까 하는데 기억이 희미하다. 어쩌면 흙요리가 아니었을까. 잠이 덜 깬 상태로 나오면서 본 수면카페 옆 놀이터의 흙이 꽤 맛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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