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지 않은 물건에서 추억을 꺼냈다

픽사 애니메이션 속 세 장면에서 떠올린 물건의 추억

MAR 27, 2018

미니멀리즘과 무소유를 외치는 세상에서 나의 포지션은 ‘버리는 걸 안 좋아하는 사람’이다. 주로 하는 말은 ‘언젠가 쓸 거야’와 ‘정이 들었어’다. 서랍을 열면 이전에 쓰던 핸드폰과 안경, 선물 받은 물건의 케이스와 포장지가 있다. 초등학교 때 샀던 피규어들은 색이 벗겨지기 시작했고, CD플레이어는 열 번 중 한 번 작동한다.

물건에 깃든 추억을 버리고 싶지 않아서 곁에 둔다. 변하는 건 물건이 아니라 나다. 처음에 애지중지하다 무심해진 것도, 녹슬도록 방치한 것도 나다. 무관심한 내가 미울 텐데 방정리를 하다 오랜만에 말을 걸면 처음 만났던 순간처럼 반겨준다.

‘안녕, 잘 지내지?’

이런 내게 늘 위로가 되는 작품이 있으니, 물건에 담긴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픽사의 애니메이션이다.

 

 

 

인사이드 아웃 (Inside Out , 2015)

유년기의 나는 편견 없이 많은 것과 교류했다. 텔레비전 속 만화캐릭터와 놀고, 잘 때마다 꿈속에 등장하는 괴물과 여행을 떠났다. 너무 즐거워서 눈 뜨자마자 꿈에서 일어난 일을 스케치북에 그리고 엄마에게 자랑했다. 낮에도 스케치북을 들고 괴물을 기다리는 날이 많았다.

‘인사이드 아웃’에는 ‘빙봉’이라는 캐릭터가 나온다. 어릴 적 꿈속에서 보던 괴물과 닮았다. 기억매립지에 갇힌 빙봉은 자신을 희생하고 라일라의 감정인 ‘기쁨’을 도와준다. 꿈속에서 자신과 놀았던 라일라의 기쁨이 자신의 행복이니까.

오랜만에 스케치북을 찾아보니 없어서 동생에게 물으니 몇 해 전에 직접 버리지 않았냐고 되묻는다. 교복을 입으면서부터 괴물은 더 이상 꿈에 나타나지 않는다. 다시 나타나면 묻고 싶다. 너는 왜 그 큰 몸으로 날 해치지 않고 옆에서 해맑게 웃어준 거야. 그리고 말할 거다. 어느새 너를 버리고 훌쩍 커버린 게 미안해서 무엇이든 잘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지금 내가 가진 것 중에 너만큼 소중한 게 있을지도 모르니까.

 

 

 

토이 스토리 3 (Toy Story 3 , 2010)

사촌 동생이 집에 놀러 온 날이 있다. 내가 집에 고이 모셔 둔 피규어를 보며 어린 동생은 계속 달라며 졸랐다. 단호히 거절하는 내게 친척들의 공격이 쏟아졌다. 다 큰 놈이 동생한테 그것도 못 주냐! 그 말에 울컥했다. 지금 내게 양보하라는 이것은 장난감이 아니라 나의 가장 친한 친구니까.

‘토이스토리3’는 우디와 버즈 등 장난감의 주인인 앤디가 대학 진학을 앞두고 집을 떠날 준비를 하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앤디 어머니의 실수로 장난감들은 탁아소에 가게 되고, 자신들이 버려진 게 아닐까 불안해한다. 탁아소에 있는 장난감들은 이들의 불안감을 부정적인 말로 더욱 증폭시키는데, 알고 보니 이들도 과거에 주인에게 버림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피규어를 처음 사고 밥 먹을 때나 외출할 때나 애지중지하고 다녔던 날이 떠오른다. 그 시절을 기억하는 장난감에게 피규어장 앞에서 멀뚱멀뚱 바라보는 내가 얼마나 야속할까. 그들에게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거나 놀아주지 않는 거나 비슷한 무게의 상처가 아닐까.

이런 물음 끝에 사촌 동생에게 피규어를 준다. 동생이 피규어를 보는 눈빛에서 예전의 나를 발견하고 마음이 놓인다.

 

 

 

월-E (WALL-E , 2008)

서랍 안에 넣어둔 물건을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신기하다, 싸게 팔아라, 쓰레기 아니냐 등 다양한 평이 나온다. 내가 보기엔 한없이 사랑스러운데 때에 따라 단숨에 평가절하당한다. 물건뿐 아니라 내 삶도 타인의 평가에 따라 가치가 매겨지곤 한다.

‘월-E’의 주인공 월-E는 텅 빈 지구에서 폐기물을 수거하는 로봇이다. 사람이 살 수 없다고 판단된 지구에서 월-E는 자기 일을 찾아서 해내고, 쓰레기더미에서 유용한 물건들을 발견해서 수집한다. 아무도 없는 지구에서 월-E는 자신의 기준으로 성실하게 삶을 이어 나간다.

자기소개를 할 때면 ‘의미부여를 잘한다’고 말한다. 지치지 않고 추억을 재생시켜주는 물건들을 지키기 위해서 내가 제일 열심히 해 온 일이니까. 오늘도 서랍 속 소중한 물건들에게 말한다. 너희들은 내 삶의 아주 가치 있는 것들이라고.

 

 

 

이미지출처 : 월트디즈니 www.disney.com / 픽사스튜디오 www.pixar.com
ⓒwalt disney picture / pixar animation studios. all rights reserved

 

 


 

 

 

경험이 바꾸는 삶에 대한 이야기,
잘 보셨나요?

이제 직접 내가 사랑하는 경험을 만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