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대로 그려도 될까요

점수 말고 마음을 위한 그림 그리기

MAR 20, 2018

유치원에 다닐 때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집 가는 길에 만난 강아지, 놀이터에서 만난 친구, 슈퍼에서 산 불량식품, 용돈을 건네는 할아버지의 손 등 내가 보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그렸다. 그림을 자랑하고 싶어서 낮잠 자는 엄마를 깨워서 보여주면 졸린 눈을 비비며 잘 그렸다고 칭찬해줬다. 무엇이든 그렸고, 많은 이들이 내 그림을 좋아했다.

중학교 입학 후 첫 미술시간의 숙제는 ‘자신이 살고 싶은 세상 그리기’였다. 밤새 내가 좋아하는 만화캐릭터부터 할아버지까지 그려서 완성하고 다음 미술시간이 됐다. 칭찬을 기대했지만 싫어서 대충 그렸냐는 말과 함께 0점을 받았다. 선생님이 정했으니 이제 내 그림은 빵점 자리다. 이때부터 점수를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시작으로 내 마음대로 그리는 법을 잊었다.

“그림 그리러 갈래?”

친구의 갑작스러운 연락에 일단은 알겠다고 답한다. ‘미술’이라는 과목을 마지막으로 들은 것이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는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다.

미술 스튜디오에 가서 눈앞에 있는 도구와 재료들을 본다. 크레파스 냄새, 팔레트 위 다양한 색의 물감, 종이 위에서 사각사각 소리를 내는 색연필. 모두 졸업 후에 처음으로 만져본다.

“여러분이 그리고 싶은 걸 마음대로 그리세요!”

강사분의 요구사항이 반갑기보단 당황스럽다. 그리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그린 경험이 까마득한 예전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키는 것을 수행하는 일은 특기 중 하나이니 일단 시작해본다. 두려웠던 스케치북 위에 마음을 있는 그대로 그린다.

그림이 완성된다. 내 그림에 점수를 매기거나 평가하는 이도 없다. 성인이 된 이후 처음으로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렸다. 어른이 되고 하는 미술은 얼마나 성숙할까 싶었는데 스케치북 위 내 그림은 나이가 많아 보이지 않는다.

그 날 이후로는 그림이 내 표현 수단 중 하나가 되었다.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는 대신 그림을 그리고, 누군가를 기다릴 때 노트를 꺼내서 그 사람을 그린다. 7살 때 가지고 있던 습관이 다시 생겼다.

중학교 때 그런 생각을 했다. 졸업하면 점수에서 벗어나 그리고 싶은 걸 그려야지. 어른이 되면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지.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알았다. 어른이 자유를 뜻한다면 그 자유를 통해 되찾고 싶던 것은 어린아이의 마음임을.

이제 점수 대신 아이의 마음을 품고 색연필을 꺼낸다. 나의 진짜 그림 그리기가 시작된다.

가장 최근에 시도한 브런치 그리기. 주말에 먹고 싶은 것을 그려봤는데, 이젠 먹을 것만 보면 그리고 싶다.

눈앞에 사과를 두고 따라 그렸다. 인상파가 뭔지는 모르지만 인상파 화가가 그린 사과 같지 않냐고 우기고 다녔다.

동물에 상황을 부여하고 색종이와 사인펜으로 꾸몄다. 그림 그릴 때 글자를 활용하는데 재미를 붙였다. 글자는 사족이 아니라 개성이다!

이쑤시개로 검은색을 긁어내면 색이 나오는 종이에 내 마음을 그려봤다. 마음을 둘러싼 수많은 감정, 자신과 타인 사이에서 고민하는 나에 대해 표현하고 싶었다. 여전히 고민이 많지만 앞으로 그림은 남이 아닌 나를 위해서 그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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