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자슥이 발레를, 해버렸다 (上)

남자에디터의 발레체험기

JUN 01, 2017

“마, 사내 자슥이 어데 발레고?”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난 그저 발레를 하겠다고 했을 뿐인데, 수능을 다시 본다고 했을 때의 반응과 비슷하다. 지금의 이 반응은 수능을 다시 본다고 했을 때와 비슷하다. 그건 너의 삶에 없는 선택지잖아! 너의 수염과 굵은 장딴지가 발레에 어울릴 거라고 생각해? 조언인지 비난인지 모를 말들이 날아들어왔다. 모의고사 점수에 상관없이 수능에 응시가능한 것처럼, 발레 또한 성별에 관계없이 시작가능하다. 다만 편견이 존재할 뿐.

“운동을 왜 하냐고? 죽을까봐”

내게 운동이란 최소한의 생존장치 같은 것이다. 일을 시작한 뒤로 목과 허리의 통증이 커졌고, 병원에 가보지 않아도 이것이 디스크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일주일에 70시간씩 일할 때도 거뜬했었는데 체력에 대한 나의 오만은 얼마 가지 못했다. 기면증에 가까운 피로가 나를 엄습해오는 일이 갈수록 빈번해졌다.

그래서 헬스를 시작하게 되었다. 안 하면 죽을까봐 퇴근하자마자 헬스에 가서 마치 오늘의 마지막 업무인 것처럼 정해진 기구들을 차례차례 했다. 그 덕분에 죽지 않았다.

“갑자기 왜 발레냐고? 죽을까봐”

업무량과 스트레스 때문에 고열로 쓰러졌던 적이 있다. 죽을까봐 운동까지 했는데 죽을 것처럼 아픈 게 화가 났다. 쓰러져서 나 자신에 대한 연민이 잔뜩 올라온 상황에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어차피 힘들어서 쓰러질 삶이면 틈 날 때마다 하고 싶은 것을 해버리자!

전역한 뒤에 복학을 하고,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느라 잊고 있던 버킷리스트를 꺼내보았다. 군대에서 틈 날 때마다 하고 싶은 일을 적었던 버킷리스트 첫 줄에는 물음이 하나 적혀있었다. 

“내 몸에도 선이 존재할까?”

처음에는 이 문장 속 ‘선’이 무엇인가 싶었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보니 어느새 눈앞에는 엠넷에서 하던 프로그램인 ‘댄싱9’이 펼쳐졌다. 남자댄서들이 자신의 순서가 되자 춤을 췄다. 손과 발의 작은 움직임이 모여서 몸에 거대한 선을 만들어낸다. 발레동작처럼 보이는 동작들 안에서 목격했다. 몸의 ‘선’이라는 것을.

“내 몸에도 선이 존재할걸?”

고열에 시달리고 얼마 안 되어서 회사를 그만두고 이직을 했다. 마침 합류하게 된 회사가 마일로다. 그래서 마일로 앱으로 발레를 찾았다. 댄스보다 발레를 먼저 찾은 이유는 도전하는 김에 좀 더 진입장벽이 높아 보이는 분야에 도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발레를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더 놀랄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발레를 등록했습니다. 이제 뭘 해야 하죠?”

발레스튜디오를 찾아서 1대1 레슨을 신청했다. 몸 속에 수분만큼이나 많은 창피함을 함유하고 있는 내가 처음 보는 이들 앞에서 발레를 자연스럽게 할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다. 처음부터 창피하다고 시작도 전에 도망가는 것보다 최대한 나 자신에게 편안한 환경을 제공하고 싶어서 1대1 레슨을 신청했다.

마일로를 통해서 신청한 뒤로 스튜디오에서 문자가 왔다. 수업 전에 참고하기 위해서 운동경험, 아픈 곳 등에 대해서 물어왔다. 몸을 쓰는 일이니 솔직해야한다는 생각에 헬스 이외에는 운동경험이 거의 없고, 운동신경도 떨어지고 유연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고해성사에 가까운 답장을 보냈다.

“편한 복장으로 오세요”

발레를 등록하자마자 뱃살과 다리털이 발레복을 뚫고 나오는 나 자신의 비주얼을 걱정했다. 발레복을 입고 압구정을 살찐 거위처럼 돌아다니는 상상을 하니 시작도 전에 기운이 빠졌다. 포털사이트에 발레복이라고 검색을 하고 나니 이것은 내가 입기에는 벌칙복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스럽게도 스튜디오에서 온 안내문자가 내 걱정을 덜어주었다. 안내문자에는 몸의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는 핏의 운동복을 입으면 되고, 발레화는 아직은 따로 챙겨올 필요가 없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첫시간에는 어느 정도의 유연성을 가졌는지도 체크해봐야 하니 기본동작과 스트레칭 위주로 할 것이라는 내용도 들어있었다. 단숨에 영화 ‘블랙스완’을 찍을 생각을 한 자신이 조금 무안해졌지만, 덕분에 좀 더 편해진 마음으로 운동복을 챙겼다.

 

 

('사내 자슥이 발레를, 해버렸다 (下)'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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