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자슥이 발레를, 해버렸다 (下)

남자에디터의 발레체험기

SEP 08, 2017

('사내 자슥이 발레를, 해버렸다 (上)'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마, 사내 자슥이 진짜 발레고!”

발레스튜디오에 들어서자 나를 반겨주는 선생님은 ‘발레리나’라는 단어를 들으면 떠오르는 모습 그대로였다. 선생님이 무심하게 걷는 모습조차 우아하게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일까.

탈의실에서 금방 옷을 갈아입었지만 바로 나가지 않고서, 괜히 심호흡도 한 번 하고 거울 앞에서 ‘발레스러워 보이는’ 발동작과 손동작을 해보다가 속으로 외쳐본다. 마, 사내 자슥이 진짜 발레를 시작한다!

“발레봉을 잡으면 될까요?”

발레봉을 보자마자 반가운 마음에 묻자 선생님이 나의 조급함을 진정시키기 위해서인지 문진표 같은 것을 준다. 양식을 보니 지난번에 문자로 한 번 물었던 운동경력, 아픈 곳 등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쓰게 되어있다. 내 몸에 대해 적어 내려가면서 내가 내 몸의 유연성이나 건강상태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음을 느낀다.

나 자신에 대해 잘 모르지만 내 상태가 별로 안 좋다는 것은 안다. 선생님에게 내 몸 상태에 대한 변명을 일장연설하듯이 풀어낸다. 선생님, 제 마지막 스트레칭은 일천구백구십구년이었던 것 같구요, 허리가 어쩌구, 목이 어쩌구, 내 몸이 어쩌구, 세상이 어쩌구…

선생님은 이 모든 말을 단숨에 삭제시키는 온화함을 가지고 대답했다.
 

“그럼 시작해볼까요?”

발레봉 대신 내가 잡게 된 것은 매트였다. 매트 위에 앉아서 멀뚱멀뚱 주변을 살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몸 안에 숨이 도는 것을 느낍니다'라고 말하며 선생님은 명상을 권했다. 머리 속을 돌아다니는 잡념들이 명상을 방해한다.

잡념은 주로 발레에 앞서서 드는 걱정들이었다. 허리디스크, 햄스트링, 러브핸들......발레를 하면 들키게 될, 숨기고 싶은 신체부위에 대해 생각하느라 집중이 거의 되지 않았다. 명상 그까짓 거 그냥 눈 감고 멍 때리면 되는 거 아냐, 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미련하게 느껴질 만큼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아하게 서 보겠습니다"

명상이 끝나고 드디어 발레가 시작된다. 선생님은 발레의 우아함에 대해 강조했다. 서 있을 때도 날개뼈는 양쪽이 서로 만날 것처럼 젖히라고 했다. 그러자 목이 닭처럼 앞으로 튀어나왔다. 목을 반듯하게 세우자 어깨가 말린다. 어깨를 펴면 가슴이 튀어나온다. 가슴을 집어넣으면 다시 날개뼈가 튀어나온다.

백조보다는 사육장에서 튀어나온 닭처럼 푸드덕거리며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자, 보다 못해 선생님이 하나하나 자세를 잡아준다. 우여곡절 끝에 ‘가만히 서 있는 자세’가 완성된다. 분명 몇 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똑같이 가만히 서있지만 분명 뭔가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선생님을 따라 팔을 뻗어 본다. 손끝으로 마치 벽을 찌르듯 팔을 곧게 뻗는다. 거울로 자세를 확인하다가 보고 말았다. 내 몸의 ‘선’을.
 

“안녕, 난 네 몸의 ‘선’이란다”

계란 하나를 쥐는 느낌으로 손을 살짝 쥐어본다. 허공에 계란을 만들고 그것을 손으로 살며시 잡는다. 깨지지 않게, 그렇다고 놓치지도 않게 강약을 조절해서 잡는다. 동작을 하는 동안에 계란은 항상 내 손 안에 있다. 계란이 든 두 손을 양쪽으로 뻗었다가, 위로 들어 올리고, 살며시 내린다.

처음에는 계란을 신경 쓰느라 정신이 없다. 정면을 응시하라는 선생님의 말에 앞을 본다. 거울 속 내가 그럴듯한 손모양을 하고 팔을 양쪽으로 뻗었다가 위로 올린다. 손을 다시 천천히 내려서 단전 앞쪽으로 손을 모은다.

처음 보는 내 몸의 동작이다. 나는 오늘 처음으로 내 몸의 ‘선’을 만났다. 언제나 있었지만 온전히 목격하는 것은 처음인 내 몸의 ‘선’을 말이다.

“이제 언제 어디서나 너를 만날 수 있어”

첫 수업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다. 큰 동작이 있던 것도 아닌데 땀으로 샤워를 했다. 큰 동작을 하지는 않았지만,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에 크게 집중했다. 내 유연성에 따라 앞으로의 진도는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집에 오는 길에 버스 한쪽에서 사람들 모르게 내 손에 집중한다. 계란 하나를 움켜쥐듯 조심스럽게 손을 말아쥐고 위로 올려본다. 15도 정도밖에 안 올려서 티도 안 났지만 괜히 주변 눈치를 본다. 버스 창문에 비친 내 몸의 선을 본다.
 

“사내 자슥이 발레를, 해버렸다”

이제 막 시작한 발레지만, 내가 발레를 시작했고 그 세계에 진입했다는 것은 몇 달 전까지는 상상도 못 했던 사건이다. 그렇다고 하루종일 발레 생각이 나거나 나 자신이 환골탈태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나의 삶은 이전과 비슷하지만, 나 자신의 몰랐던 면을 발견하는 순간이 전보다 늘었다. 내 몸의 선을 목격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내 몸의 선에 집중할 만큼의 여유가 없었을 뿐.

샤워를 하면서 몸을 좌우로 젖혀보고, 양치질을 하면서 발을 모아보고, 버스 손잡이를 우아하게 잡아본다.

그렇게 내 일상의 발레가 시작된다.

 

[1대 1 발레수업 들으러 가기]

[함께 발레수업 들으러 가기]

 

 

경험이 바꾸는 삶에 대한 이야기,
잘 보셨나요?

이제 직접 내가 사랑하는 경험을 만나세요!